2021. 9. 6. 00:47ㆍ후기/연극
별점 ★★★★☆
보게 된 계기
정선기 배우의 차기작이라서 알게 됐다.
연극이라고 해서 처음엔 으음 연극... 잘 모르겠군! 볼까 말까? 했었다.
그랬는데 신체를 많이 쓰는 연극이라고 해서 자첫은 해야겠다고 생각해서 표를 하나 잡아뒀었다.
그게 자첫표가 바로 오늘!
부가 설명하자면 자첫 전부터 뭔가 템플에 대한 생각을 하게 되면서
표를 늘리게 되었고 현재는 4개의 표가 있다.
내용
말 그대로 템플 그랜딘의 자서전이다.
자폐인 템플이 어린 시절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
그 과정에서 엄마는 어땠는지, 본인은 어땠는지,
만났던 다른 이들은 어땠는지 보여준다.
가장 중요한 것은 '템플의 내면과 세상을 이해하는 방식'에 대해서
'신체로 표현'한다.
템플은 세상을 보다 시각적으로 이해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템플의 가장 큰 업적이라고 하는 미국의 가축시설의 3분의 2 구축은
짧은 대사로 말이 나오며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포옹 기계에 대한 템플의 갈망과 열정이었다.
내 기억에 남은 것
후반부에 그런 대사가 나온다.
템플은 오랜 시간이 지나서, 다른 사람들을 인터뷰하게 되었는데
그때에서야 비로소 다른 사람들이 자신과 다른 방식으로 세상을 이해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고.
나는 그 대사를 듣고나자 그런 생각이 들었다.
템플은 다른 대부분의 사람들을 이해해야 했고
우리는 템플과 다른 대부분의 사람들로서, 어쩌면 템플만 이해하면 됐던 것인데
그것을 하지 못해서 템플을 지독히도 괴롭혔겠구나 하는 생각.
그리고 템플의 엄마가 견뎌야 했을 사회적 시선과 압력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손을 잡아주고 같이 나아가준 사랑.
마지막에, 템플이 엄마에게 묻는다.
"사랑이 뭐냐"고.
나는 그 질문을 듣자마자 느꼈다.
사랑을 느꼈기에, 비로소 사랑이 뭐냐고 물을 수 있게 된 것이라고 말이다.
전체적으로 극의 메시지가 좋다.
연출도 좋다.
가장 인상 깊은 연출은 붉은 밧줄을 사용하는 씬인데,
정말 멋지므로 다들 가서 보는 것을 추천할 정도이다.
또, 다른 사람들의 손을 잡고, 발을 디디면서 나아가는 템플 그랜딘도
너무 좋은 연출 중 하나였다.
배우들이 정말 몸을 많이 쓰는 신체연극이다.
모든 게 신체로 표현되니 가히 행위예술의 정점이라고 할 수 있을지도.
정선기 배우가 특히나 직업 만족도가 높아 보였다. 공연을 즐기는 느낌.
나는 그렇게 공연에 애정을 가지고 있는 사람의 공연을 보면 덩달아 행복해져서 좋다.
(인사이드 윌리엄에서 임준혁 배우가 그랬다.)
정선기 배우는 다른 곳에서 보면 단연 돋보이는 몸짓을 보여주는데,
이 공연에서는 혼자만 돋보이지 않고 전체적으로 잘 어우러져서 신기했다.
문경초 배우는 박열에서 봤고, 나머지 배우들은 정선기 배우 외에는 다 처음 보는 배우들이었는데
내 기억에 특히 남은 배우는 배솔비 배우였다.
몸도 잘 쓰고, 대사톤도 너무 내 스타일이었다.
멋져요. 근데 트위터에 배솔비를 검색해보니 배송비 오타로 적힌 것만 한가득 나와서 슬펐다.
더 보고 싶은 배우다.
다만 아쉬운 점이 있다면,
처음 시작할 때는 템플의 엄마와 같은 당사자가 아니며
책이나 편지를 보았다는 이야기를 하면서 시작을 하는데
끝날 때에는 템플의 엄마로서 끝나기에 뭔가 배경이 안 맞는 듯한 어색함?
액자 밖에 있다가 안으로 들어와서 연기를 했으면 다시 나가는 것까지 보여주던가
아니면 처음부터 안에 있던가... ㅎ 이점이 좀 의문이었고
전체적으로 웃포가 있는 극인데
웃어도 되나 싶어서 웃음 참기 챌린지 엄청 하는 극.
좀 어이없어서 나오는 웃음도 많고.
나는 전체적으로 대놓고 주는 웃포는 나랑 포인트가 안 맞아서 안 웃겼는데
오히려 웃어도 되나? 싶은 부분에서만 웃겨가지고 웃음...
뭔가 후련하게 다 같이 웃고 싶은데
차마 그럴 수가 없는 건 소재가 조심스럽기 때문이겠지.
완벽히 이해할 수 없는데 웃을 수는 없는 거잖아.
이해보단 존중이 더 중요한데 이때 내가 함부로 하는 웃음은
상처가 될 수 있으니까....
다들 그런 생각을 가지면서 관극을 하는 듯하다.
붉은 밧줄 씬이 너무 멋있어서
얼른 자둘을 하고 싶은데,
10일 뒤에 자둘이라 고민이고, 김주연 배우의 템플도 보고 싶은데
정선기 배우랑 크로스인 때는 다다음주이고,
중간에 보고싶은데 나는 돈을 좀 아껴야겠고,
이런저런 이유로 고민이 많아지는 중이다.
그래도 확실한 건,
좋은 극이긴 하다는 것.
그리고 굉장히 멋진 극이다.
《나는 템플, 템플 그랜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