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4. 3. 16:41ㆍ후기/책
별점 ★★★★★
나는 평소 소설을 즐겨 읽지 않는다. 하지만 이 책은 한 번 꼭 읽어보고 싶어서 빌리게 되었다.
이 책을 알게 된 계기는 신조어인 '메갈'에 있다.
자신의 권리를 소중히 하는 멋진 현대 여성이라면 '너 메갈이냐?'라는 말을 한 번쯤 들어보았을 것이다.
또는 간접적으로라도. 스스로에게 메갈인지에 대한 물음을 갖게 하는 말을 보았을지 모른다.
나는 그 말의 뜻과 출처를 어렴풋 알게 되었다.
2015년 메르스가 퍼지던 당시 다음 DC에서는 메르스에 대해 이야기를 하는 갤러리인 '메르스 갤러리'가 있었다. 이곳이 출처이다. 메르스가 잠잠해진 이후 메르스 갤러리에서 사람들이 모여 페미니즘적인 활동이 일어났고 - '이갈리아의 딸들'이라는 도서 속 이갈리아를 합성시켜 스스로를 '메갈리안'이라고 칭한 것으로 보인다.
즉, 메르스의 '메'와 이갈리아의 딸들의 '이갈리아' + n 이 붙은 단어이다.
필자는 단순히 메갈이라는 단어의 어원이 된 소설이라는 점에 처음 관심을 두게 되었으며
후에 이 책이 이른바 여성 우월주의 사회를 상상하여 지어진 소설이라는 점을 알고 난 후에는 책을 꼭 읽어야겠다고 다짐 했다.
그리고 현재 코로나가 심한 상태에서. 도서관이 문을 닫기 전 마지막으로 빌린 책이 되었다.
우선 책을 읽으면서 했던 생각은 '정말 흥미롭고 재미있다'였다.
단순히 여성이 지배한다! 남성은 여성의 부속품! 이라며 막무가내로 우기는 느낌이 전혀 아니다.
이 책을 읽다 보면, 이 소설 속 사회는 정말 그럴듯하다.
어딘가에는 이 사회가 존재하는 것이 당연하게 느껴진다. 어떻게 보면 현재 사회가 오히려 변형된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이갈리아의 사람들이 우리를 본다면 너무나도 끔찍하게 생각할 것이 뻔할 정도이니.
이 책의 줄거리는 한 가정에서 시작한다. 바로 루스 브램이라는 장관의 가정이다.
그녀의 가정은 그녀의 하우스 바운드(=배우자), 딸, 아들로 이루어져 있다. 이야기의 초반은 이갈리아의 사회를 보여준다. 이갈리아의 여성들은 부성 보호라는 것을 통해 남성들을 거둔다. (혼인) 그리고 남성들은 페호라는 속옷을 성기에 착용한다. 출렁거리지 않도록 한다. 여성들은 출렁거리는 가슴을 자랑스럽게 여기고 다닌다.
여성들은 일하기에 편한 복장인 바지, 짧은 머리를 가지고 있다. 반면 하는 일이라곤 집에서 애나 보면 되는 남성들은 - 어리석게도 자신의 겉모습에만 열중한다. 화려한 프릴과 리본이 달린 옷, 치마... 그리고 저녁에는 다음 날 있을 다른 집 하우스 바운드들과의 티타임을 위해서 턱수염을 예쁘게 말고 있다. 이러한 모습은 아주 당연한 것이다. 하지만 이런 '당연하고' 남성이라면 당연히 기쁘게 받아들여야 할 '사회적인 특권'도 있는 이 사회에서 자란- 루스 브램의 아들은 반발심을 가지고 맨움 (이갈리아의 남성들은 맨움, 여성들은 움이다) 해방주의 운동을 하게 된다.
이 책에서는 하나님 아버지가 아닌, 하나님 어머니이다. 당연한 것이다. 생명의 근원은 여성으로, 당연히 어머니가 중심이다. 하나님 아버지? 누가 들어도 코웃음 칠 웃긴 단어일 것이다. 사이비일까?
10년 전쯤, 하나님의 교회라는 종교에 대한 말을 처음 들었다.
하나님 아버지만 있고 왜 하나님 어머니는 없을까요?
그들은 하나님 어머니를 믿는 종교라고 했다.
어린 시절 흔히 그랬듯이 나도 교회를 다녔었는데, 거기선 하나님 아버지가 너무 당연한 것이어서
전혀 생각해보지 못한 것이었다. 그런데 더 놀랐던 건 다들 그 이야기를 듣곤 '하나님 어머니라니 완전 이상해. 사이비야.' 라고 하는 것이었다. 나는 하나님 어머니라는 거 새롭고 괜찮은데? 왜 그 생각을 못했을까? 하고 아쉬워했었다.
그 때의 기억이 났다.
모든 것이 여성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그리고 이제는 '평등 사회'가 되었다. 맨움-남성도 원한다면 움-여성이 가지는 권리를 당연히 가질 수 있다. 하지만 이게 과연 쉬울까? 오랜 시간 만들어진 문화와 사람들의 인식은 결코 그럴 수 없게 한다. 정신적으로 다시 압박해올 뿐.
이게 지금 현실과 뭐가 다를까?
나는 이 책이 1977년에 지어졌다는 것에 놀랐다.
사회가 변하기 위해서는 이 23년이란 세월은 티도 안 난다.
이갈리아와 우리 사회가 다른 점을 찾자면 끝도 없다. 이 많은 요소들이 현재 여성을 억누르고 있는 것과 같다.
이갈리아는 과연 여성에겐 천국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것은 지금의 사회를 살아가고 있는 여성들이 읽었을 때에만 그럴 뿐- 현대 사회의 남성들이 그렇듯 이갈리아의 여성들은 자신이 가진 것들이 하나하나 특권에 해당하리란 것을 전혀 모를 것이다.
이 책을 보고 느낀 것은
아무리 노력해도 내 이번 생이 끝나기 전에 이갈리아 사회를 볼 수가 없다는 점이었다. 물론 그렇기에 이게 소설인 것이다. 소설로나마 이 기분을 알고, 이럴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깨우친 것이 의미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역시 너무 아쉽다. 나도 퇴근 후 자고 있는 말랑하고 예쁜 남성을 조물 거리고 뽀뽀하고 싶기 때문이다.
마음에 드는 구절은
" 뱃사람의 위업에 대한 모험 이야기는 이제 그만 읽고 대신 소년들을 위한 책만 보도록 해라. 그러면 네 꿈이 좀 더 현실적으로 될 거다. 바다에 가고 싶어 하는 맨움은 하나도 없어. "
" 인류에게서 가장 중요한 성기 -움의 성기- 는 그래서 움의 몸 안쪽으로 보호되는 위치에 있답니다. 이것은 움의 성기가 맨움의 성기보다 훨씬 더 민감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죠. 반면에 맨움의 성기는 바깥쪽으로 달려 있지요. 그 이유는 맨움 성기에 무슨 일이 생겨도 그리 큰 문제가 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는 이 기관을 움의 몸 안으로 엄청난 수의 정자를 내뿜기 위해 사용한답니다. "
아주 유쾌하면서도 씁쓸한 기분이 드는 소설이었다. 초반은 지루하지 않았고 한 장 한 장 줄어드는 게 아까울 정도였다.
하지만 후반부는 사회운동으로 나아가면서 재미보다는 생각을 더 하게 된다.
이 사회에 의문을 품고 있는 누구나에게 이 책을 추천한다.
그 의문이 여성들은 왜 만족하지 못하는가? 이든, 남성들은 왜 지금이 남녀평등이라고 말하는가? 이든 상관 없을 것이다.
모부님, 특히 엄마에게 추천할 장벽이 낮다고 생각한다. 이 책의 재미 요소는 중년 여성에게도 재미있는 판타지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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