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5. 6. 22:25ㆍ후기/뮤지컬
별점 ★★★★★+★
보게 된 계기
정동극장은 좋은 극이 잘 올라오는데
어떤 분이 이 극을 정말 잘 보고 오신 걸 보고 나도 궁금해져서
막공 전에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작년 살수선 할 때부터 궁금했던 배우인 윤나무 배우의 네불라,
그리고 작년에 뮤지컬 <판> 에서 좋게 봤던 배우인 박란주 배우의 수아를 맞춰서 예매했다.
마침 40퍼 쿠폰도 증정하고 있어서 4만 원 대에 관람했고,
자리도 내가 가장 무난하게 전체적인 걸 보기 좋아하는 오피 제외 5열 즈음 사이드 블록 통로 -1로 잡아놔서 만족 ㅎㅎ
아 그리고 내가 정말 좋아했던 뮤지컬 중 하나인
레드북의 창작진들이 참여한 극이라고 하더라!
믿고 보는...!!
내용
네불라가 제목에서 말하는 네 번째 대역배우이지만
그를 찍는 사진기사, 수아도 누군가의 대역이었다는 점에서 그 둘의 인생을 관통하고,
네불라는 찍히는 행위, 수아는 찍는 행위를 통해 자신의 인생을 들여다본다.
그리고 네불라는 자신이 살아온 인생을 자신의 시각과 경험을 바탕으로 수아에게 전달함으로써
비로소 자신의 삶을 직시한 셈이 된다.
네불라는 자신을 보기보다는 타인을 보는 사람이었다.
어려서부터 그럴 수 밖에 없는 환경이었다. 자신을 비로소 웃으며 봐주었던 사람의 기억은 자신이 자신으로서 존재할 때가 아닌, 누군가를 흉내 내어 다른 이의 빈자리를 “재미”로 승화시켜 즐거움을 주었을 때였으니까.
그러면서 네불라가 갖게 되는 꿈은 “배우” 였다. 자신이 아닌 다른 이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추천을 받은 것이었다. 하지만 배우로서의 자질은 사람마다 말하는 것이 달랐는데, 누군가는 연기하는 본연의 나는 버리고 완전히 해당 역할에 들어가야 한다고 하고, 누군가는 본연의 나를 투영해서 있는 대로 연기해야 한다고 한다.
네불라는 어쩌면 완벽주의자였을지도 모른다. 아니, 모두에게 사랑받고자 하는 마음, 관심받고자, 인정받고자 하는 마음이 강한 인물이었을 것이다.
모두를 만족시키는 방향, 선택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을 모른 채였던 네불라는 어쩌면 맹인이었다.
그런 네불라의 재능은 누군가에게는 도구로서 아주 완벽했고, 그 누군가는 네불라를 자신의 대역으로 사용하게 된다.
네불라의 젊은 시절 삶에서 원했던 것은 자기 자신보다도, 자신을 원하는 그 무엇들이었기 때문에 그 대역으로서의 삶은 네불라에겐 만족이었다.
네불라의 선택이, 네불라가 보지 못하는, 보고싶지 않았던 곳에서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모를 때까지 네불라에게 그것이 만족이었다.
하지만 네불라에겐 “이후”가 있었다.
누군가의 대역은 평생 지속할 수 없었으며 그것은 깨질 수밖에 없었으니 그 이후의 삶은 다시 네불라에게로 돌아갔다.
네불라는 어딘가가 거짓되어 자신이 모르는 곳에서 끔찍한 일이 있었음을 인지한 채, 자신의 과거 또한 인지한다. 독재자의 대역이었던 자신, 그것이 자신의 가치였다고 여길 수밖에 없었던 상태의 자신, 그 과거가 영원히 자신의 과거로 남을 수밖에 없는 현재까지도.
그가 행했던 일은 고의성이 없다고 인정되었지만,
네불라는 그 일의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자신의 눈을 가리고 타인의 눈만 좇았고, 그 타인들은 모두가 아니었다. 어느 독재자의 눈이었다.
극 보기 전 이야기
본 공연 이야기
너무 갓극을 봐서
다른 걸 할 수 없는 상태를 경험해 본 적이 있는가?
내가 그렇다…
이건 진짜… 사람의 인생과 사회의 모습을 이렇게 관통해도 되는 걸까?
이 극에서의 네불라의 선택에 따른, 네불라의 책임은 무엇일까?
나는, 네불라가 다시는 눈을 감지 않고, 입을 다물지 않는 것이 그 책임을 다한 것이라고 느꼈다.
보면서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이라는 책이 생각났다. 읽지는 않았지만, 이 책에서도 독재자의 아래에서 가려진 시야로 일에 충실했던 어느 공범이 나온다.
하지만 아이히만은 진실을 느낀 후에 다시 눈과 귀를 닫고 입을 닫고 도망치는 삶을 살았다는 점에서 네불라와 다르다.
네불라는 아이히만과 달리, 시야가 트이자 그것을 직시하였다. 그리고 마저 자신의 인생을 본 것이다.
하지만 네불라는 자신이 가진 기억만으로는 한계를 느꼈고, 타인의 “판단”을 필요로 했다.
어쩌면 그것은 판단의 주체를 여전히 타인에게 돌린다는 점에서 네불라는 변화하지 못했는데,
그 타인에 해당했던 수아 또한 자신도 누군가의 대역이었다는 점을 알게 된다.
마트라는 작은 사회에서 일하면서, 남의 대용으로만 취급당하는 경험. 익숙했지만, 무언갈 해보려 할 때마다 “적당히 하라”는 시선으로 억누름 당하는 대역의 삶.
수아 또한 누군가의 대역이었고, 네불라라는 대역을 이해할 수 있게 된다.
타인의 시선으로 볼 때는 불쾌했으나, 자신과 공통점이 있는 우리 안에 같이 존재할 때는 위로해줄 수 있는 존재.
네불라는 운이 좋았다. 자신의 삶을 다시 투영하고 받아들이는 과정으로 이용한 사람이 또 다른 대역이었으니까. 아니면 운명일지도 모른다. 대역은 또 다른 대역을 알아보는 걸지도 모르니까.
대역을 썼던 독재자도, 그 자신이지 않았다. 만들어내는 무언가였을 뿐.
다시 자신 홀로 남아 감당하기엔 너무 커져버린 것은 결국 독재자를 자살로 이끌었고 그에게는 미래가 없었다.
수아는 한 아이의 “보모” 역할이었을 뿐이었다.
어릴 적 고향을 떠나, 입양되어 온 미국에서 수아는 언제든 대체될 수 있는 역할을 강요당했다.
일하고 있던 마트에서도, 혐오 당하기 일수였으나 노력으로 매니저 역할을 따낸다. 하지만 더 잘해보려는 수아의 노력은 “이전의 매니저만큼만 하자”는 억누름으로 무산이 된다.
하지만 누군가의 대역으로서의 삶은, 지속 가능하지 않았으며 벗어나야 한다. 그 방법은 모른다. 인생은 딱 자기 키만큼 깊은 바다여서, 가만히 있으면 잠길 뿐인데 뛰어봐야 숨만 겨우 쉴 수 있을 뿐이다.
하지만 모두가 뛰면서 겨우겨우 숨만 쉬는 것은 아니다. 누군가는 헤엄을 치고 있었다니.
네불라도, 수아도 헤엄치는 법을 몰랐다. 하지만 이제는 “헤엄친다”는 의미를 알게 되었다는 점에선 다를 것이다.
수아는, 자신을 대역으로 만든 사람이지만 무고한 사람을 안다. 자신이 돌보아야 했던 아이, 수아의 “책임”
수아는 다시 그 아이에게 연락하여 마주한다. 어릴 적 자신의 책임을, 동등한 시선을 주고받을 수 있게 된 현재로서.
이 뮤지컬은 넘버보다도 메세지에 중점을 두었다. 그렇기에 보고 나서 머리엔 멜로디가 아니라 인생에 대한 생각으로만 가득 차게 된다.
나는 연극을 좋아하는 편인데, 메세지에 집중할 수 있다는 점이 그랬다. 하지만 이 뮤지컬은 가히 최고의 뮤지컬이자 연극이라는 생각이 든다.
120분 동안 두 사람의 인생을 통해서 세상을 느낀다는 게 가능하구나, 하고 느꼈다.
이 대단한 경험을 하게 해준 창작진들과 배우들에게 감사할 따름이다.
윤나무 배우의 공연을 보는 것은 처음이었는데, 흡입력이 있는 배우였다.
박란주 배우는 작년 뮤지컬 <판>에서 봤던 배우인데,
정말 그때도 느꼈지만 음색과 성량, 연기 모두 좋은 배우라는 생각만이 든다.
수아의 인생에서의 슬픔이 노래로 전해질 때, 가슴을 울리고 눈물이 흐르는 경험은 정말… 최고였다.
자극적인 연출이나 대사 없이,
받아들이는 사람이 생각하면서 눈물 흘리게 되는 극이 이른바 “갓극”이라고 생각하는 나에게 이 극만큼의 갓극은 드물 것 같다.
이런 좋은 공연을 보게 되어서, 현재를 살아가고 있는 나라서 의미있는 하루가 되었다.
이 극은 외면하고 있는 진실과 누군가의 고통을 소비하는 모든 우리가 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어느 순간 마주하게 될 진실에 대비하는 마음은 누구에게나 필요할지도 모른다.
재관람 여부
이미 막공을 하였고 내가 최근에 다른 공연들을 보느라 일정이 빠듯해서
두 번은 보지 않았다. 하지만 이 극은 회전보다는 한 번의 관람으로도 충분한 가치와 충격을 선사하는 극이기에
별로 아쉽지는 않다.
더 많은 사람들이 봤으면 좋겠고,
이런 멋진 극이 자주 올라왔으면 하는 바람이 생겼다.
《인생은 내 키만큼 깊은 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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